[노트북을 열며] 수학이 지배한다
[중앙일보] 입력 2011.03.31 20:24 / 수정 2011.04.01 01:53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최근 IBM코리아 임원을 통해 흥미로운 소식을 접했다. 미국 본사에서만 지난해 100명이 넘는 박사급 수학자를 새로 채용했다는 거였다. 그는 “IBM 연구소는 이제 거대한 수학자 집단이 돼가고 있다”고 했다. 양현미 KT 통합고객전략본부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응용수학 박사인 그는 “한때 몸담은 미국 아멕스카드 본사에는 수학 박사 학위 소지자만 200명이 넘었다”고 전했다. 원인은 넘치는 데이터, 그리고 이를 빛의 속도로 소화해내는 수퍼컴퓨터의 등장이다.경제부문 차장
현대인은 이미 ‘걸어 다니는 숫자’다. 통화하고, 인터넷에 접속하고, 각종 카드를 쓸 때마다 온갖 정보를 줄줄 흘린다. 이 자료들을 잘 분석하면 기업은 맞춤 마케팅을 펼칠 수 있고 정부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다. 테러범을 잡거나 심장마비 사망률을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쓰레기 데이터가 너무 많다는 것. 누군가 가치 있는 정보만 골라 패턴화하고, 이를 통해 미래마저 예측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창안한다면? 그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른들 이상할 것이 없다. 제임스 사이먼스(74) 르네상스테크놀로지 최고경영자(CEO)는 그 완벽한 현현이다.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이던 그는 41세 때 펀드업계에 뛰어들었다. 1989년 그가 수학자들을 불러모아 만든 ‘메달리온펀드’는 2007년까지 연평균 3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국 금융위기로 세계가 들썩이던 2007년에도 그는 28억 달러의 연봉을 챙겼다. 이로써 그는 수학적 분석을 통해 투자 판단을 내리는 ‘퀀트 펀드(Quant Fund)’의 창시자가 됐다. 경영학자 대신 수학자·물리학자·천문학자가 넘치는 그의 회사는 월가에서 ‘캠퍼스’로 불린다. 파이낸셜타임스가 그를 ‘10억 달러짜리 연구원’이라 표현한 이유다. 그러고 보면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CEO, 구글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수학과 출신이다.
우리나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수학 전공자를 찾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신창언 서강대 수학과 교수는 “성적이 아주 나쁘지 않으면 취업엔 별 어려움이 없다”고 전했다. 컴퓨터공학이나 경영학을 복수 전공한 경우엔 회사를 골라 갈 수 있다. 금융·보험업계 진출이 두드러지지만 마케팅·생명공학·기계공학 분야 수요도 적잖다. 이 덕분에 자연과학부 입학 뒤 수학 전공을 택하는 학생 수가 몇 년 새 60여 명에서 90여 명으로 크게 늘었다. 김정한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은 “수학자란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 해결하는 사람이다. 그런 능력은 어디서나 통한다”고 말했다. 양현미 본부장은 수학이야말로 21세기 최고의 유망 학문이라고 주장한다. 서울대 수학과 후배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도 “수학과 함께 문학이든 심리학이든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겸비한 사람은 천하무적이 될 거라고 말해줬다”며 웃었다. 한국 부모들이 자녀에게 수학 공부를 강조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셈이다.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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