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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공장을 지휘하는 '글로벌 객주'
단추 중국서, 지퍼 일본서 꿰매기는 방글라데시서…
공장 없이, 재봉사 없이 年 20억벌 의류 생산
전 세계 3만여개 공장 오케스트라처럼 연결
홍콩을 대표하는 기업 중에 리앤펑(Li & Fung Ltd.)이란 회사가 있다. 의류와 장난감, 액세서리 등 소비재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회사다. 작년 매출은 한화로 19조원이 조금 넘는다.여기까지는 그리 놀랄 만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삼성전자 매출의 4분의 1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지난해 비즈니스위크는 이 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 29개 중 하나로 선정했고, 포브스는 아시아에서 가장 놀랄 만한 50개의 기업 중 하나로 꼽았다.
이 회사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바로 독특한 비즈니스모델에 있다. 이 회사는 단 하나의 공장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단 한 명의 재봉사도 고용하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매년 20억벌 이상의 의류를 생산한다.
방법은? 예를 들어 미국의 어느 의류회사가 이 회사에 남자 반바지 30만벌을 주문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 회사는 단추는 중국, 지퍼는 일본, 실은 파키스탄에 주문한다. 파키스탄에서 받은 실은 중국에 보내 직물로 짜서 염색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을 꿰매는 일은 방글라데시의 공장에 맡긴다. 고객이 빠른 배달을 원하기 때문에 세 개의 공장에서 나누어 작업한다.
이 회사는 이런 방식으로 전 세계 40개국에 퍼져 있는 3만개의 공급업자(공장)와 200만명 이상의 공급업체 직원들을 움직인다. 이 회사가 직접 월급을 주는 종업원은 그 1%도 안 된다.
- ▲ 그래픽=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지난달 홍콩 리앤펑 본사의 쇼룸을 방문하니 마치 작은 백화점 같았다. 코카콜라와 디즈니로부터 토이저러스, 막스앤스펜서, 카르스타트켈레(독일 의 대형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기업들의 브랜드를 단 옷이며 장난감이며 액세서리들이 전시돼 있었다. 모두 리앤펑의 고객 기업들이다. 이 회사가 관리하는 브랜드만 900개가 넘는다.
경영계에서는 이 회사가 하는 일을 '공급사슬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SCM) 서비스'라고 표현한다. 제조 원가가 싼 공장을 찾는 것은 이 회사가 하는 일의 일부에 불과하다. 디자인, 원자재 조달, 제조 관리, 운송, 통관에 이르기까지 고객사가 원하는 모든 일을 대행한다.
리앤펑그룹의 빅터 펑(Fung·64) 회장은 자신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비유했다. "오늘날 경쟁이란 기업 대 기업이 아니라 팀 대 팀, 즉 하나의 공급사슬과 다른 공급사슬 간의 경쟁을 의미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지휘자의 역할입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강한 공급업자의 네트워크를 설계하고 이끌어가는 키잡이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경영자들이 이 회사로부터 배울 점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제조업체들의 경우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기업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어 새로운 생존 논리가 필요하다. 공장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공급사슬 관리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리앤펑식 기업 운영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우리 대기업들도 많은 협력업체를 두고 있지만, 종종 강압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 기업들은 협력업체 관리를 업(業)의 요체로 삼는 리앤펑의 철학과 노하우에서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펑 회장은 수십년간 시행착오를 통해 이룩한 리앤펑의 비즈니스모델을 최근 책으로 풀어냈다. '평평한 세상에서의 경쟁 전략(원제: Competing in a flat world)'이 그것이다.
―책을 보면서 마치 토머스 프리드먼의 '지구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 2005년)'의 실전 매뉴얼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프리드먼의 책을 읽었을 때 매우 흥미를 갖게 됐습니다. 그가 묘사하는 세계가 제게 매우 친숙했기 때문이죠. 우리는 지난 20년간 그런 세계에서 일해 왔으니까요. 그의 말대로 세계가 평평해진다면 어떻게 글로벌 기업을 만드는가 하는 것이 바로 제 책이 대답하려 한 것입니다. 그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내가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사슬을 편성해서 팀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펑 회장의 프로필을 보면, 도대체 부족한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는 16억달러(약 2조원)의 재산으로 포브스의 홍콩 부자 랭킹 12위에 올랐다. 게다가 그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경제협력기구인 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03년 홍콩 행정수반 선거 때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인상이었고, 인터뷰 내내 편안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줬다. 질문에 대해 대답할 때는 그대로 받아 쓰면 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짜임새가 있어서 학자의 면모가 묻어났다.
- ▲ 빅터 펑 회장은“과거에 기업들은 모든 것을 다 스스로 하려 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다 잘할 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 말했다. 그는“10가지 일 중 잘하는 3개만 집중하고 나머지 7개는 파트너(협력업체)에게 아웃소싱할 수 있다”면서“각 기 자신이 잘하는 일에 특화된 기업들로 팀을 짜면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손정호 포토 저널리스트
빅터 펑(Fung) 회장은 자신들의 방식은 도요타의 생산 모델과 비교된다고 말했다.
"도요타에선 협력기업의 모든 것이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지요. 반면 우리의 방식은 '느슨한 연계(loose coupling)'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공급업체가 우리와 파트너가 됐을 때 우리는 그 업체가 우리를 위해서만 독점적으로 일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업체의 100%가 아니라 30~70%만 원합니다. 물론 30% 이상은 돼야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겠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100%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 왜 그런가요?
"공급업체가 우리 말고 다른 사람하고도 일해야 새 아이디어가 생기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공급사슬도 살아 숨 쉬게 되죠. 늘 배우고, 늘 변화하면서 말입니다. 우리의 공급사슬은 종종 새로운 멤버를 넣고, 팀원이 바뀌기도 합니다.
팀이 폐쇄된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추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느슨한 네트워크이기도 합니다."
― 토머스 프리드먼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는 제 좋은 친구입니다. 3~4년 전부터요. 하지만 그를 안 것은 더 오래됐죠. 1994년인가 1995년인가 기자이던 그가 홍콩에 와서 저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 기업이 공급사슬을 편성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선 전체 공급사슬의 개념적인 틀을 잡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팀원 모두가 박자를 맞추어 가도록 지휘해야 합니다. 두 번째 포인트는 공급사슬이 글로벌해지는 만큼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다루고 함께 일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피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공급사슬에 적대적인 관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공급사슬에서 힘 있는 이가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려 할 경우 이런 일이 생기게 됩니다. 적대관계는 공급업자의 창의성을 꺾고,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공급사슬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모두에게 손해가 됩니다."
이 대목에서 하청업체들을 너무 쥐어짠다고 비판받는 한국의 일부 대기업이 생각났다. 그의 의견을 물어봤다.
"축구를 혼자 할 수 없는 것처럼 네트워크는 공생(共生) 관계입니다. 바이어가 공급업자를 쥐어짜면 공급업자는 그다음 공급업자를 쥐어짜고, 그 공급업자는 또 그다음 업자에게 그렇게 하고 해서 모든 공급사슬이 그렇게 돼버립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쥐어짜서는 안 됩니다. 일을 처리하는 옛날 식 방법이죠."
- ▲ 홍콩 리앤펑 본사의 쇼룸 중 하나에서 리앤펑의 한 고객사 직원들이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주요 고객사에는 별도의 쇼룸이 마련돼 리앤펑측과 협의나 상담을 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가구나 도자 기 등 제품별 쇼룸도 있다. / 손정호 포토 저널리스트
■ 무역 중개에서 공급사슬 관리로 초점을 바꾸면서 비약적 발전
리앤펑은 1906년에 빅터 펑 회장의 할아버지가 중국 광저우에 설립했다. 처음엔 서구의 고객들에게 중국에서 만든 도자기와 비단을 수출하는 일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엔 홍콩에서 만든 저가 의류와 장난감들이 추가됐다.
무역업을 주로 하던 이 가족 기업에 근본적인 개혁이 일어난 것은, 1970년대 초 빅터 펑 회장과 동생인 윌리엄 펑 사장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였다. 두 사람은 단순 무역 중개에서 벗어나 전체 공급사슬을 관리하는 일로 사업의 초점을 바꾸었고, 부가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 거세게 몰아친 글로벌화 물결과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의 부상은 형제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리앤펑의 매출은 1992년부터 2006년까지 22% 이상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했다.
― 현재 공장이 하나도 없는데, 공장을 직접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는지요?
"사실 1950~1960년대만 해도 우리는 공장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저의 삼촌은 플라스틱 조화(造花)를 만들기 시작했고, 뒤에 완구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삼촌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공장을 팔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우선 하나의 공장으로는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고, 또 어떤 업종에서 공장을 하나 가지면 그 업종에 있는 다른 모든 공급업자와 이해의 상충 문제가 생깁니다. 즉 그들이 경쟁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협력을 얻을 수 없게 되지요. 따라서 공장을 하나도 안 가지고 전체 시장에서 구매하는 게 더 낫습니다."
― 소비자 니즈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점점 관심을 갖는 요구는 무엇이며,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소비시장 변화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욕구의 단편화(斷片化·fragmentation)입니다. 그래서 작은 시장, 틈새시장들이 요구되죠. 헨리 포드는 검은 차 하나만 만들면 됐습니다. 대량 생산이죠.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남과 다르기를 원합니다. 나는 당신과 똑같은 옷을 입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기업엔 가장 큰 도전입니다. 전체 시장은 꽤 정확히 전망할 수 있으나, 작은 부분 시장은 수요가 올랐다 내렸다 매우 전망하기 어려우니까요.
이 문제에 대한 제 대응책은 마지막 순간까지 어떤 물건을 구매할지 결정을 늦추는 것입니다. 시장으로부터 가장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가 결정을 하죠. 왜냐하면 가장 위험한 것은 시장이 원치 않는, 잘못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주문과 선적 사이의 소요 시간(turnaround time)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 유연한 조직을 위해 사내에 '작은 존 웨인'들을 키운다
― 공급사슬이 세계화되면서 기업들은 충격과 피해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공급사슬의 어느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그 공급사슬의 전체 기업이 영향을 받습니다.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글로벌 공급사슬은 매우 개방된 시스템이므로 충격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한 가지 드릴 수 있는 말은 유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9·11 테러 때 많은 사람이 저희에게 물었습니다. 공급사슬이 무너지느냐고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물건을 뉴욕으로 보낸다고 할 때 가는 길은 여러 가지입니다. 뉴욕으로 직접 가지 않아도 캐나다를 거칠 수도 있고, 미국 동부가 아닌 서부나 남부로 우회할 수도 있고. 글로벌 공급사슬이 가는 길은 여러 가지입니다."
― 공급업자들에게는 어떤 것을 강조합니까?
"한가지 늘 강조하는 것은 법과 규정을 준수하라는 것(vendor compliance)입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려면 노동이나 환경 등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이것만 담당하는 우리 회사 직원이 수백명입니다. 물론 우리는 바이어에게 좋은 가격을 제공해야 합니다. 하지만 낮은 가격은 보다 효율적인 운영과 생산성 향상, 공정 혁신 이런 것들로부터 와야지 컴플라이언스의 희생으로부터 와서는 안 됩니다. 리앤펑, 그리고 우리 바이어의 명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우리는 어느 공장이 너무 싸게 물건을 제공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싸다면 뭔가 잘못된 게 있다는 것을 아니까요. 뭔가 나쁜 원자재를 쓰거나, 아니면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말입니다."
펑 회장은 평평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은 유연한 조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조직 문화를 '크지만 작은 기업(big small company)'이라고 설명했다.
"큰 기업을 만들기 위해 큰 관료주의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리앤펑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가 바로 기업가 정신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조직에 작은 사업단위(unit)들을 만들어 각기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저는 이들을 '작은 존 웨인들(Little John Waynes)'이라고 부릅니다."
― 존 웨인요?
"예. 서부 영화를 보면 존 웨인이 대열 앞에 서서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리고 나쁜 녀석들에게 총을 쏘죠. 우리의 사업 단위들도 그렇습니다. 각기 30~50명 정도로 구성돼 있는데, 리더, 즉 작은 존웨인들이 조직을 움직입니다. 우리는 현재 300개의 사업단위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자신의 사업을 하는 것처럼 일합니다. 월급쟁이가 아니라 말입니다. 존 웨인이 되면 무엇을 얼마에 팔지, 이윤 중에서 얼마를 보너스를 가져갈지 모든 게 자유입니다."
■ 보호주의는 중소기업에 가장 큰 타격이 될 것
― 세계가 평평하다지만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울퉁불퉁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공급사슬 지휘자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한가요?
"물론입니다. 더욱더 필요합니다. 지난 10~20년간 세계가 번영한 것은 지구가 평평해졌기 때문입니다. 장벽을 부쉈기 때문이죠.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보호주의(protectionism)가 다시 오고 있습니다. 최근 각국 정부가 내놓는 경기 부양책을 보면 뭔가 보호주의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보호주의가 되면 지구는 다시 울퉁불퉁해 집니다. 그리고 공급사슬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글로벌 공급사슬의 중요한 기여는 중소기업도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해줬다는 것입니다. 예전엔 모든 것이 수직적으로 통합됐고, 모든 것이 한 공장 안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사람이 공급사슬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보호주의가 실제적인 위협이 됐고, 중소기업이 가장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방치해 우리가 그동안 이룬 것들을 파괴하게 한다면 정말 수치스런 일입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배석한 한 여성 임원에게 "그렇지 않아요, 줄리? 우리가 중소기업에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 귀하는 FTA(자유무역협정)와 같은 양자(兩者) 협정을 비판하면서 다자간(多者間) 협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습니다. 하지만 도하라운드와 같은 다자간협정의 체결 가능성이 요원한 마당에 FTA는 차선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웃으며)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인생 전부를 통틀어서 다자주의자였습니다. 홍콩에서 다자주의는 모든 게임의 룰이었고, 우리 모두는 이것으로부터 혜택을 받았습니다.
양자주의가 무엇이 문제인지 아세요? 모든 사람이 양자주의가 차선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도 다자주의를 열심히 안 하려 할 것입니다. 다자주의는 벽돌로 쌓은 벽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벽에서 벽돌을 하나씩 꺼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개, 두개, 열개라면 몰라도, 50개를 빼낸다면 벽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세상이 양자주의로만 연결되면 너무 복잡해 집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비즈니스는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 (동생인) 윌리엄 펑 사장과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나는 말하고(talk), 그는 운영(run)합니다.(웃음) 동생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 이름 빅터의 첫 글자 V는 '비전(vision)'을 의미하고, 자기 이름 윌리엄의 첫 글자 W는 '일(work)'을 의미한다고요. 회사 일을 매일 실제로 처리하는 것은 윌리엄입니다."
― 귀하는 홍콩의 다른 재벌들과 달리 집 외에는 부동산을 거의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동산을 사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명(commitment)은 무역 비즈니스이니까요. 이것이야말로 저와 우리 가족 모두의 에너지가 향해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비교우위이고, 또 핵심역량입니다. 다른 사람은 부동산에 강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리앤펑 (Li&Fung)
1906년 설립된 세계적인 소싱(sourcing) 전문 무역회사 그룹이다. 주력 기업인 리앤펑 유한공사(Li & Fung Limited) 외에 유통 업체인 IDS그룹, 편의점 체인인 써클K와 성안나 베이커리를 경영하는 CRA 등 3개사가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다. 이밖에도 비상장 계열사가 여럿 있다. 페라가모의 아시아 지역 유통망과 토이저러스의 아시아 판매권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리앤펑 유한공사는 전년보다 19.8% 늘어난 1107억 홍콩달러(약 17조900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순이익은 24억2000만 홍콩달러로 전년보다 21% 감소해 7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했다. 미국이 최대의 시장으로 매출의 62%를 차지하며, 유럽이 29%를 차지한다. 지난해 의류 전문 공급회사인 마일즈(Miles) 패션그룹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 2월엔 미국의 패션회사인 리즈클레어본(Liz Claiborne)을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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